4차 산업혁명과 정부의 역할
대선으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많은 후보들이 캠프를 차리고 각종 공약을 쏟아내고 있는 와중에 MB정권 때의 녹색성장,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에 이어 차기 정부의 정책 전반을 관통할 화두들도 떠오르고 있다. 그 중 단연 강력한 후보 중 하나가 ‘4차산업혁명’일 것이다.미래산업의 성장동력을 말할 때 4차 산업혁명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분위기에 모든 부처에서 지원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과연 4차 산업혁명은 우리의 성장 침체 구원을 위해 나타난 구세주일까?
산업혁명의 단계와 ‘3차 산업혁명의 승리자’ 대한민국
흔히 산업혁명이라 하면 증기기관 발명으로 대변되는 1차 산업혁명을 말한다. 이 시기에는 과거 동물 혹은 인력에 의존했던 기계적 에너지를 증기기관을 이용한 열에너지로부터 손쉽게 얻어낼 수 있게 되면서 인류사회 전반에 획기적 변화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생산력이 급속하게 늘어나면서 인간 생활이 편리해진 이점에도 불구하고, 산업혁명을 이룬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사이와의 격차는 점점 벌어져 결국 제국주의와 식민지 경영 시대가 열리게 된다.
2차 산업혁명은 대략 1870년부터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로 정의하는데 에디슨, 테슬라같은 천재들이 여러 가지 발명품을 쏟아내면서 새로운 상품시장이 형성되었고, 포드자동차로 대표되는 대량생산 시스템이 전기에너지의 실용화로 가능해졌다.
1,2차 산업혁명이 에너지와 관련된 혁명이었다면 3차 산업혁명은 디지털 정보 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PC를 비롯한 IT기기, 인터넷과 모바일의 보편화로 본격적인 정보화시대가 열린 시기이다. 3차 산업혁명의 시기는 대략 1970년대를 시발점으로 하는데, 중화학공업 중심이었던 초기 산업화를 통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던 우리 경제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등장한 반도체, 무선통신기기 등의 주역들은 3차 산업혁명에서 꼭 필요한 요소들 이었다. 이와 더불어 국가주도로 데이터 통신 네트워크가 전국적으로 완비되면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정보화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나라로 등장하게 되었다. 흔히 우리나라를 ‘3차 산업혁명의 승리자’로 평가하는데, 정보통신 분야에서 불모지와 다름없었던 상황에서 정부 주도의 일관된 투자와 기술 개발이 큰 기여를 한것이 사실이다.
‘인더스트리 4.0’과 ‘4차 산업혁명’
4차 산업혁명은 이제 막 시작하고 있는 현상들을 지칭 하기 때문에 유래가 명확치 않고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으며, 이미 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4차 산업혁명 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적도 있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시기는 2010년 독일에서 발 표한 제조업 고도화 전략의 일환인 ‘인더스트리 4.0’에서 ‘제조업과 정보통신의 융합’을 뜻하는 의미로 사용된 이후로 보며 2016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4차 산업혁명’을 의제로 설정하면서 전 세계적 주요 화두로 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현재 다뤄지고 있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를 들여다보면 인더스트리 4.0과의 구분도 잘 되어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인더스트리 4.0이 ‘스마트 팩토리’로 대표되는 제조업의 자동화와 전산화라면, 4차 산업혁명은 제조업에 국한된 경제적 변화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 사회는 물론 인간 본성까지 되돌아보게 만드는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4차 산업혁명과 초연결사회의 등장
우리의 호불호와 관계없이 세계는 분명 4차 산업혁명이 지향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다. 과거 1차 산업혁명이 한참 진행 중일 때 영국에서는 기계 파괴운동인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났지만, 변화를 막을 수는 없었다. 3차 산업혁명의 중심 기술이 인터넷이었다면 과연 4차 산업혁명의 분수령은 무엇일지, 말 그대도 ‘혁명’을 이끌어낼 만한 중대한 기술의 발전이 있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흔히 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 등 지능화와 자동화에 관련된 기술들이 언급되지만 과거 증기기관, 전기의 실용화, 인터넷에 버금가는 영향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확실한 점은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초연결 사회의 등장이 이러한 기술들의 실현과 함께 거의 모든인류의 생활양식과 경제 활동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우선, 디지털 제조혁명으로 대부분의 공산품들은 상품화되어 기능 및 품질보다는 가격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국가 간의 경계가 점점 무의미해지고 공유경제가 점점 확산되며 과거 연관이 없던 경제행위들이 서로 연결되는 새로운 형태의 산업들이 출현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이전의 산업혁명들이 그랬듯이 1~2년 안에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그 변화는 향후 몇 십 년에 걸쳐 일어날 것이며, 그 변화에 잘적응한 국가와 경제는 또 다른 도약을 이룰 것이다. 1차와 2차 산업혁명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결과 식민지로 전락했던 과거 역사를 교훈삼아 패러다임이 바뀌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비는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고 그 방법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정부 주도의 산업화 전략과는 크게 달라져야만 한다. 모든 경제주체가 서로 연결되어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상품에 대한 근본적 개념이 전환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흐름에서 정부가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여 기존의 하향식 정책을 답습한다면 오히려 변화의 걸림돌이 될 것이다.
초연결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과 인력양성 필요
이러한 시대에 정부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멍석에 해당하는 플랫폼을 갖추는 일이다. 초연결이 가능한 네트워크 인프라를 조성하고 이를 가로막는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 누구나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4차 산업혁명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정 부의 역할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만들어 놓은 플랫폼에서 누가, 어떻게 놀지를 지시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어떠한 활동들이 일어나게 될지는 철저히 민간의 자율에 맡겨져야 한다. 정부가 간섭하기 시작하면 초연결사회로 가는 혁신이 일어나기 어려울뿐더러, 정부가 기하급수적으로 복잡해지는 사회를 일일이 통제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변화에 발맞춘 인력수급과 교육도 정부가 맡아야 할 중요한 임무이다. 예를 들어, 알파고 이후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비슷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전문기사와 대국시키는 이벤트를 가진 바 있지만, 가장 알파고 열풍이 거셌던 우리나라에서는 그러한 시도가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그만큼 관련 분야의 전문가 인력 풀이 취약하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하드웨어에 집중된 인력 구조와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소프트웨어 인력 양성이 정부의 몫일 것이다.
IMF 이전 우리는 ‘넛크래커’ 상황을 경험한 바 있다. 일본의 첨단기술과 중국의 값싼 노동력 사이에 끼어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제 우리는 또 다시 일본의 경제 회복 및 구조조정으로 인한 경쟁력 강화와 중국의 신기술 확보로 생긴 새로운 ‘넛크래커’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상황은 마침 우리 산업이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에서 선구적 선도자(first mover)로 바뀌는 시점과 겹쳐 더욱 큰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IMF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며 경제 체질이 한 단계 성숙했듯이, 4차 산업혁명의 바람은 우리의 대응에 따라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변화에 대한 성공적 대응을 위하여 정부는 비합리적 규제를 선제적으로 철폐하며 여태까지의 ‘나를 따르라’ 식의 정부주도에서 민간주도로 과감히 경제정책을 전환하는 등, 플랫폼 조성에 노력을 집중하여야 한다. 4차 산업혁명에서 ‘혁명’이라는 말이 의미하듯이 우리는 급격한 변화의 와중에 있다. 변화의 끝에 어떠한 미래가 있을지 예측하기는 어려우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과거 어느 시기보다도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가는가에 달려있다는 점이다.